엘리트 외교관의 대기업 이직, 잦은 '사고'에 청와대 감찰까지…흔들리는 외교부

입력 2019-04-19 18:06  

문재인 정부 들어 외교무대서 외교부 역할 축소
'요직 중의 요직' 북미과장 이례적 민간行
"외교부에 대한 청와대 불신에 좌절"



[ 임락근 기자 ] 외교부가 술렁이고 있다. 조직의 자존심이 무너져내린다는 탄식도 나온다. 김일범 북미국 북미2과장(45·외무고시 33기)이 최근 사표를 내고 한 대기업으로 이직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과거에도 외무 공무원들이 민간 기업으로 옮기는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김 과장처럼 ‘젊고 잘나가는’ 외교관이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는 일은 드물었다.

외교부 내에서는 김 과장의 ‘이직’을 놓고 “주요 현안에 대한 외교부의 주도권 상실, 청와대의 감찰, 직업 외교관으로서의 자부심 약화 등으로 바닥에 떨어진 조직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이 나온다. 북핵 문제를 놓고 주요 강대국들이 한반도에 외교적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시점에서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왜 떠나나

19일 외교부에 따르면 김 과장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임원급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해당 기업의 글로벌성장위원회에서 주로 북미 사업전략 업무를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 관계자는 “사업을 크게 확대하고 있는 북미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기업은 최근 미국 셰일에너지기업 블루레이서 미드스트림에 1700억원을 투자한 것을 비롯해 조지아주 배터리공장 건설에 1조9000억원을 투입했고, 제약업체인 앰펙도 인수하는 등 북미 지역에서 에너지, 바이오, 반도체 등의 사업을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김 과장은 1999년 외무고시 2부(외국어 능통자 전형) 수석으로 외교부에 입성했다. 20대 사무관 시절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까지 통역을 맡는 등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외교부 유엔대표부, 아르빌 연락사무소, 주미 대사관 1등 서기관을 거쳐 지난해 2월부터는 북미2과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그는 주(駐)싱가포르·덴마크 대사와 오사카 총영사를 지낸 김세택 대사의 아들로 탤런트 박선영 씨의 남편이다.

김 과장의 갑작스러운 이직은 문재인 정부 들어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외교부의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관측이다. 북핵 문제뿐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 등도 청와대가 앞장서서 주도하는 과정에서 외교부의 역할이 축소됐고, 외교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한 전직 고위 외교부 관료는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겠지만, 엘리트코스인 북미과의 과장급 외교관이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에는 김경한 전 외교부 국제경제국 심의관이 포스코 무역통상실장(전무급) 자리로 이직하기도 했다.

무너지는 기강

외교부에 대한 청와대의 불신과 견제가 본격화하면서 젊은 외교관들의 좌절감도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지난해 말 외교부 내 정보 유출자 색출을 이유로 외교부 차관보부터 과장급까지 미·중·일 라인 핵심 인사 10여 명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감찰을 벌였다. 공교롭게도 외교부 직원들의 볼썽사나운 실수도 잇따랐다. 영문 보도자료에 북유럽 ‘발틱’ 국가를 남유럽 ‘발칸’ 국가로 잘못 쓰는가 하면, 한·스페인 차관급 회담에서 구겨진 태극기를 비치하는 등 잇따른 기강 해이를 보인 것이다.

청와대의 강력한 입김은 외교부 내부의 조직에 대한 선호도도 바꿔놓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기존 지역 외교라인들이 ‘적폐’로 몰려 불이익을 받으면서 동북아국, 유럽국 등 지역국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박근혜 정부 후반에 북미라인을 총괄하던 김홍균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관행과 달리 영전하지 못한 채 퇴직했다.

그와 함께 대북정책의 중추적 역할을 맡았던 장호진 전 총리 외교보좌관, 조현동 전 외교부 기획조정실장 등도 현 정부 출범 이후 새 보직을 받지 못했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열심히 일해 이뤄놓은 성과도 정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 정부 들어 새삼 깨달았다”며 “자신들도 한발 삐끗하면 적폐로 몰릴지 모른다는 심적 부담이 젊은 외교관들을 옥죄고 있다”고 전했다.

핵심 요직에 청와대 출신이 ‘내려꽂히는’ 인사 관행도 ‘강경화 외교부’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근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중국 대사로, 남관표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이 주일본 대사로 임명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 대사나 주일 대사에 청와대 출신 거물들을 배치하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분들이 사드 보복이나 한·일관계 경색 같은 외교적 현안을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는 미지수”라며 “외교부 직원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푸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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